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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지금, 여기, 서울이야

2017.02.15
36개월 된 아이가 유치원에서 달고 온 감기 때문에 몇 일  전부터 밤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침대에서 더운 땀을 흘리며 멎지 않는 기침을 쏟아내고 있느니 방청소나 하자”라는 마음으로 가을쯤 계획된 이사를 위해 쓸모 없어진 것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책장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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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모은 여행잡지가 이렇게나 많았었나…”


철 지난 여행잡지는 날짜 지난 신문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지도 못한 곳의 사진으로 가득한 욕망의 꾸러미를 이참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울컥 들었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진 잡지의 펼쳐진 페이지에서 ‘지금, 여기’라는 노랗고 큼지막한 제목의 에세이를 만났다. 쭈그려 앉아 펼쳐진 페이지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소설가 박민규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두 페이지에 빼곡하게 채워진 짧은 에세이를 읽고, 잡지 버리기는 잠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짤막한 에세이를 뜯어 책상 위에 펼쳐놓고 자판으로 옮겨본다.


지금, 그러니까 밤 12시


지구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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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글  박민규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분명 J의 목소리였다.
에게해의 바람소리 같은 잡음이 귓속을 윙윙 맴도는 이십 년 전의 국제전화였다.


배낭여행을 떠나는 젊은이가 그리 많지 않은 시절이었고, J는 배낭여행을 떠난 최초의 친구였다.
예상치 못한 초. 현. 실. 적인 전화를 받으며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세차장에서 손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렵이었다. 거긴 어때?
라고 마치 그리스 인처럼 J가 물어왔다. 망설임 끝에 나온 궁색한 대답은  ‘더워죽겠어’였다.
목이 고장 난 작은 선풍기가 반지하의 그늘 속에서 턱, 턱 소리를 내며 돌고 있었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구나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나는 J와 그리스와 유럽을 떠올리며 세차를 했다.
이곳을 벗어난 인간에게 이곳에 남은 인간은 결코 “지금 여기 한국이야”와 같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나도 여행을 해야지’ 술만 마시면 변혁이니 빈부의 격차 같은 걸 논하던 때였지만, 실은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빈부의 격차가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을  좌우하는지, 나에게 여행이 그 얼마나 멀고도 소원한 얘기인지를. 그렇게 이십 대가 지나갔다. 나는 언제나 알바에 매달렸고 J는 언제나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발목을 삐거나 손을 다치고, 혹은 땀띠나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다 일을 마쳤고, 몸이  괜찮아질 때쯤 여행에서 돌아온 J의 고생 담을 들어야 했다. 힘들었겠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나는 중얼거렸다. 말도 마라니까, 땅콩을 잡으며 J는 고개를 가로저였다. 정말이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갔다. 떠나기 보다는, 나는 늘 이곳에 남아 일을 해야만 하는 인생이었다. 세상을 둘러본 J는 십여 년 전 미국에 뿌리를 내렸고, 간혹 또 거기서도 캐나다나 남미를 여행하며 카드나 엽서를 보내오곤 했다. 지금 여기 칠레야, 지금 여기 나이아가라야. 도 나이가 들기 전에 나이아가라 정도는 가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역시나 나는 남아서 해야 할 일과 생활과 숙제가 쌓여 있는 삼십 대였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도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는 말이다. 언제 LA 한 번 들르지 그래? 선명해진 국제전화 속의 목소릴 들으며 나는 담배를 물거나 야근을 하고는 했다. 거긴 어때? 그저 그래.


한동안 잊고 지내던 J에게서 소포가 온 것은 며칠 전의 일이다. 소포의 겉봉엔 화려한 필기체의 메리 크리스마스가 적혀있었고, 속에는 약간은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는 플라스틱 인형이 들어있었다.
아스트러넛 지저스. 즉 ‘우주인예수’란 이름의 인형이었다. 선물  고마워,라고 이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우주복 차림의 예수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J의 답장은 짧고도 간결했다.


사실 우리도 전부 우주인이더라고.


언제나 이곳에 남았던 인간으로서, 언제나 이곳을 떠났던 인간의 한마디에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인도 캐나다 인도, 실은 이 별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우주인이다.
한 번도 이 곳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나는 문득 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외치고픈 마음이었다.


지금 여기 한국이야.


예수님도, 돌아가신 내 아버님도,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노래하신 천상병 선생님도 실은 모두 우주인이었다. 우주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여행이자 관문이요, 경로가 아닐 수 없다. 빈자도 부자도 실은 모두 이곳을 여행하는 중이고, 말죽거리도 종로도 그 모두가 낯선(그리스와 토성과도 동등한)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삶도 죽음도 모두가 여행이란 글귀를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이 삶이 여행이 아니라면 죽은 이들은 대체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또 우리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곧, 아마도 내 아들의 아들의 아들 세대 정도면 배낭 우주여행이 대성황을 이룰 거란 생각이다. 누구는 우주를 나가고 누구는 역시  손세차 아르바이트에  꼼짝없이 매달릴 세상이겠지만 기억하자, 그때도 변함없이 인간은 모두 우주인이고 인간은 누구나 여행 중이다.


지금 여기 안드로메다야.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문득 그런 전화를 받으면 좋을 것 같은 새벽이다.
목이 고장 난 선풍기처럼 나는 잠시 울컥하겠지만, 설사 아버지가 “지금 여기 말죽거리야”말한다 해도 하나 이상할게 없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여행 중이고, 말죽거리는 안드로메다 만큼이나 실은 멀고 낯선 곳이니까. 어쨌거나 말죽거리는 가봤지만 안드로메다엔 가본 적 없는, 나이아가라도 그리스도 가본 적 없는 – 나는 지금 이곳을 여행 중이다. 안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아내가 문득 그립고 그립다. 전화를 걸어볼까? 그러니까 한 사람의 우주인으로서.  여보, 지금 여기 옆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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